감상-아름다운 땅

초록에 물들다

리네플 2008. 4. 8. 00:57
여자 정혜를 만나다.
몇 년 전 영화포스터를 보면서 초록색 스웨터를 입은 여주인공의 시선과
영화의 제목에 나도 모르게 자꾸 마음이 끌렸던 영화.

2005년 작.
감독-이윤기 / 배우-김지수, 황정민

영화를 보기 전엔 사랑에 관한 슬픈 기억을 갖고 있는 주인공에 관한 이야기려니 했었다.
좋아하는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가 OST로 쓰였다는 걸 알고 궁금함은 더해졌다.
휴일 오후 동생과 함께 영화를 보았다.

저 영화 재밌는 거야?
글쎄...아마.

볼륩 좀 높여봐, 잘 안들린다.
최대한 올린거야.
그래도 안들리네.
지금 아무말도 안해서 그런것 같은데?
 

아무런 소리 없이 배경음악도 없이 말없이 그렇게 영화가 시작되었다.
너무하다 싶을 만큼 꾸밈없이...
그녀는 내내 말이 없었기 때문에 더 가만히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홈쇼핑 광고와 프랑스 영화.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듯 바라보는 촛점없는 시선.

어느 날 길잃은 새끼 고양이를 데려다 키우기 시작한다.
고양이도 그녀처럼 말이 없다.
어두운 곳으로 숨기만 할뿐 마음을 열고 그녀에게 다가오려 하지 않는다.

고양이가 그녀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을 때.
그녀는 고양이를 다시 처음 발견했던 아파트 정원에 버린다.

"고양이에기도 사랑을 주기 힘든가봐."
동생이 말했다.

고양이에게 조차 마음을 주기 힘들 정도로 닫혀있는 이유가 뭘까.
조금씩 그녀에게 말할 수 없는 무엇이 있다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유년시절의 나쁜 기억. 기억하고 싶지 않은 지워버리고 싶은 사건.
그랬구나....
엄마의 죽음 외로움.

주문한 책을 책장에 꽂아 놓고 바라보던 슬프도록 아름다운 눈망울.
그 사이로 보이던 책들, 워터십 다운의 토끼들.
상처는 없어지는 게 아니고 덮어지는 거라던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영화 속에서 초록색은 그렇게 상처를 덮어주는 의미를 담고 있던 것 같다.
앙상했던 나뭇가지에 새순이 돋기 시작하면 곧 온통 초록잎으로 뒤덮이듯이.

복수를 결심하고 숨가쁜 갈등의 현장에서 돌아 나왔을 때.
복수하려던 칼에 베어 손에서 피가났다.
아팠다.
원하지 않았던 유년시절의 아물지 않은 상처와 함께 쓰리도록 아팠다.
아픈 만큼 울었다.
눈물과 함께 흐르는 물과 함께 아픔과 상처도 씻겨 내려간다.

' 그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야....'

나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감독도 같은 생각이 아니었을까...
 
그녀는 불현듯 고양이를 생각하고 다급히 찾아 나선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를 만난다.

정혜씨!
그가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그녀에게는 이름이 있었다. 그가 그녀의 이름을 찾아주었다.

정혜...
참 여자이름 같다.

단편영화구나.
단편영화는 아니고...저예산 독립영화?

끝이야?
아닐걸?
끝인데?
그러게?

이런 영화는 좀 불친절하지. 구구절절 설명도 없고...

영화를 보고 나서 나음을 입었도다. 나음을 입었도다..라는 노래가 생각났다.
생명. 씻음. 나음.
구부러진 것이 펴지고 망가진 것이 고쳐질 수 있다는.
다시 설 수 있다는.
사랑할 수 있다는 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