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옆 동물원

유년 시절에 대한 기억

리네플 2009. 6. 12. 23:27


1.
여름이면 담장 밖으로 키큰 해바라기꽃들이 한줄로 주욱 피었더랬다.
키가 무척이나 컸던, 기다란 줄기에 커다란 얼굴을 한 해바라기꽃이 무거워보였다.
나는 꽃이 기린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목이 기다란 노란 기린.

꽃은 또 그닥 예쁘지도 않았다. 낮동안 하루종일 해를 향해 고개를 들고 있고 그래서 이름이 해바라기라는 것도 다른 꽃과 달리 씨앗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참 재밌었던 재밌는 꽃이었다.

‘누가 여기에 이 꽃을 심었을까? 누군가가 씨앗을 뿌렸나보다.’

아이들은 해바라기 씨앗을 먹곤했는 데 그땐 특별히 맛을 느껴서라기보다 씨앗을 벗기면 하얀 알맹이가 입안으로 쏙 들어가는 재미에 즐겼던 것 같다.
해바라기꽃이 가득했던 공터.
술래잡기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얼음땡을 하면서 밤새 뛰어 놀던 기억들.
해가 지기 시작하고 모여 놀던 아이들은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갔다. 동네의 빈공터는 그렇게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놀이터에 하나둘씩 집들이 생기고 그렇게 유년 시절은 해바라기 정원과 함께 사라졌다.






그림 고흐/ 노란 해바라기



2.
누구나 갖고 있는 유년 시절에 대한 기억.
할머니에 대한 기억.동네 아이들과 밤새 놀던 기억.
동네 뒷산에 찾아왔다던 바바리맨 아저씨.
겨울이면 썰매장이 되주었던 학교 앞 작은 언덕. 
사춘기, 아버지와의 갈등, 방황하던 이야기, 진로에 대한 고민, 그 시절 친구들...
너에 관한 옛날 이야기를 들으면 그때 함께 하지 못했지만
그 시절의 네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지곤해서 그렇게 나는 네가 더  좋아졌다.

어쩌면 우리는 이제 다른 곳에서  또 다른 정원을 만들고 있는거라고 생각했다.
그곳엔 마음을 빼앗긴 아네모네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줄 알았던 장미꽃 민들레와 채송화같은 작은 꽃들, 들꽃들과 들풀도 있다. 그리고 해바라기.

그렇게 나는 너의 해바라기가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