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운대를 보고 정말 어쩌면 부산에도 그런 거대한 쓰나미가 몰려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만일 그 순간 내가 바로 그 장소에 있다면...아찔했다.
나는 살아남은 생존자 중 하나일까 아니면 휩쓸려 행방을 알 수 없는 한사람일까.
돌아보면 지금까지 해마다 수없이 많은 태풍과 물난리와 화재와 교통사고와 예기치 않은
크고 작은 사고들이 내 옆을 무수히 지나갔다.
그런데도 아무일 없이 나는 지금까지 '생존자'로 남아있다는 것이
어느날 문득 새롭고 중요한 사실처럼 다가왔다.
엄마,이렇게 많은 사고가 있었는 데 어떻게 지금까지 우리는 큰일 없이 지내왔을까? 신기하지 않아?
-그야 하나님이 지켜주시니까 그렇지.
그런가. 그런데 하나님이 왜 지켜주셨을까?
-하나님 일 하라고 지켜주셨지.
그래? 그럼 먼저 간 사람들은 하나님이 맡긴 일을 다해서 간 거겠네.
....
음, 빨리 가야 좋은 거겠네. 할일을 다 했으니까...
(엄마가 날 흘겨봤다. 아니, 쟤가 지금 무슨 소릴...)
엄마, 그럼 우린 무슨 할일이 아직도 많이 남아서 여기 있는 걸까.
....
"사랑하는 당신에게
같이 살면서 나의 잘못됨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늘 너그럽게 모든 것 용서하며 애껴준 것 참 고맙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의 품 안에서 편히 쉬시길 빕니다.
너무 쓰리고 아픈 고난의 생을 잘도 참고 견딘 당신을 나는 참으로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당신을 뜨거운 사랑의 품 안에 편히 쉬시게 하실 것입니다.
어려움을 잘 감내 하신 것을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승리의 면류관을 씌워주실 줄 믿습니다.
자랑스럽습니다."
당신의 아내 이희호
2009. 8. 20"
"참으로...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 손수건·손뜨개 담요·성경도 관속에
이씨는 이 편지를 자신의 책 <동행>의 첫장에 적었다.
또렷한 정자로 시작됐던 글씨는, 끝으로 갈수록 점점 흔들렸다.
편지를 적어 내려가던 이씨의 심경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이씨는 직접 손 뜨개한 작은 보온용 담요도 가져왔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이 서거 전 입원해 있을 때 배를 따뜻하게 하기 위해 이씨가 직접 떠와 덮어줬던 것이다.
그리고 김 전 대통령이 생전에 가까이 두고 읽었던 성경책, 자신이 쓰던 손수건도 준비했다.
이 땅에서 해야할 일을 다 마치고 돌아가는 발걸음은 어떨까.
고인의 얼굴이 평안해보였다.
생전에 공식적으로 흘린 네번째 눈물이 되었다는 사진속의 모습도 참으로 어린아이 같았다.
참으로 사랑했다는,
부인과 하루종일 함께 있어 행복하였다는
고인이 남긴 일기와 그를 보내는 부인의 편지가 애틋하게 마음을 울린다.
내 삶의 마지막에 그, 아니 그가 아니어도 좋다. 누군가에게 주게 될 편지에 나는 뭐라고 쓸 수 있을까.
또는 내가 그 누군가로 부터 받게 될 마지막 편지에는 무엇이 남겨져있을까.
편지는,
사랑하는 당신에게로 시작되어 고마왔다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