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가끔 나를 보고 '문화사역을 하려는 사람'으로 오인한다. '문화사역자', '특수사역자'. 이런 분류가 난 썩 맘에 들지 않는다. 물론 한때 '문화사역'이 꿈인적이 있었다.
대학 1학년 여름수련회 때였던 것 같다. 교회 선배 한명이 내 꿈을 물었다. 뭐가 되고 싶냐는 거다. 그때 붐과같이 일어나고 있던 문화선교와 내가 갖고 있는 딴따라적 기질덕택에 난 고민없이 '문화사역자'가 꿈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곧 후회했다. '문화선교'라는 말이 가져다 주는 모순으로 난 스스로 '문화사역이 꿈'이라는 말을 더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문화란, 공동체가 만들어내는 트랜드라고 생각한다. 공동체의 시대정신이 빚어내어 결과론적으로 표출되는 삶의 양태이다. 그렇기에 현재의 대중문화가 이렇다는 것은 현상학적 문제 이면의 사회학적 접근과 분석을 통해 판단될 수 있는 영역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크리스천 문화'란 무엇인가. 그것은 '크리스천들의 살아낸 결과'다. 크리스천 공동체가 모여서 만들어 낸 시대정신과 트랜드가 그것이다. 그런데, CCM을 크로스오버하여 대중문화에 고의로 끼어넣는것이 문화사역인가. CCM음악가들이 가요차트에서 1,2위를 이룩하면 크리스천 문화가 이땅에 열매맺는건가. 우리가 그렇게 살아내서 만든 문화적 결정체가 아닌데, 몇몇의 문화사역자들이 기획해놓고 만들어 놓은 창작품을 크리스천문화라고 정의 내려버리면 그 창작물들이 우리 공동체의 시대정신으로, 트랜드로 대체되는 것인가? 그 창작물이 우리의 시대정신을 바꿀 수 있는 것일까.
의처증 환자들은 대부분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서 컵의 손잡이를 잡는다고 한다. 의심많고 편집증적인 성격이 컵을 잡을때 표출되는 것이다. 의처증을 치료받으면 컵의 손잡이를 다섯손가락을 이용해 힙차게 잡는 것이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의처증환자가 컵잡는 법을 바꾼다고 해서 그 병이 치료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컵을 어떻게 잡느냐는 바로 문화적 현상과도 같다. 내가 느끼는 문화사역자들의 오류는 이 컵잡는 방법을 바꾸는것에 몰두한 나머지, 컵만 바로 잡으면 의처증이 고쳐질 것이라는 신화적 믿음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크리스천 공동체의 문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것은 예배를 통해 만들어진다. 크리스천들이 모인곳은 곧 예배하는 곳이다. 그리고 그가운데 공동체가 누리는 문화가 탄생된다. 최고의 크리스천 문화는 최고의 예배공동체를 통해서 탄생된다. 문화사역자가 되고 싶다면, 내가 속한 공동체를 예배공동체로 거듭나게 하라. 그리고 그 공동체가 만들어 내는 보석과도 같은 섬김과 나눔의 열매들이 문화로 거듭나고 열매맺는 모습을 기대하고 바라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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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역에 대해 생각해보게되는 글이어서 담아왔다.
크리스천 문화와 문화사역은 조금 다른 의미가 아닐까 하게 된다.
문득 10년 뒤 나의 모습을 생각하게 된다.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