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땅


지난 2월 11일,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는 부산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의 벅찬 감동의 무대가 펼쳐졌다.
같은 시간 한국의 강원도 평창 시골 초등학교에서도 고사리손들이 모여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냈다. 동심이 만들어낸 순백의 멜로디, 그 천상의 소리를 함께 감상해보자.


※ 부산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 뉴욕을 적시다

지난 2월 11일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첫 해외 공연을 펼친 '부산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 이 오케스트라는 부모 없이 수녀들의 보살핌 속에서 자란 남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미 국내에서는 아이들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도 소개됐을 정도로 유명하다. 지난해 아이들이 펼친 자선음악회에 참석한 서울시향 관계자가 미국 공연을 제의했고 지휘자 정명훈씨가 카네기홀 공연을 추진했다고 한다. 연주를 마친 바이올린 주자 정성훈(18세)군은 꿈을 꾸고 있는 듯했다.

"연주가 끝나자 5층까지 가득 메운 관객이 모두 일어나 박수를 치며 환호했어요.
그 모습을 보는 순간 가슴속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가 솟구쳐 올라왔습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소년은 카네기홀 무대에 서기 위해 지난해 12월부터 하루 7~8시간씩 연습에 매달려왔다. 주말도 없었다. 바이올린 줄에 손가락 끝이 헐어도 아프지 않았다. "카네기홀에 선다는 생각만으로도 너무 행복했어요. 연습조차 즐거웠습니다."

공연이 시작되기 30분 전. 카네기홀은 어수선했다. 자선공연이었기에 어린 자녀를 데려온 가족이 많았다. 음악 전공자도 아닌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여서인지 관객의 기대치도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무대에 올라온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앳돼 보였다. 공연 경험이 많은 졸업생 단원들은 앞자리를 후배들에게 양보했다. 단원은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재학생 40여 명과 졸업 후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직장인 60여 명.

◇ 막이 내린 뒤에도 카네기홀은 감동으로 가득했다
첫 곡은 찬송가 '내 주를 가까이하게 함은'이었다. 영화 < 타이타닉 > 에서 배가 침몰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악단이 연주하던 바로 그 곡이다. 지휘자도 없이 서로 눈빛만으로 박자를 맞췄다. 기교는 가능한 한 절제했다. 객석은 어느새 숙연해졌다. 자세를 고쳐 앉는 관객도 보였다. 믿음을 향한 간절한 소망이 찬송가 선율을 타고 객석을 적셨다. 연주가 끝난 뒤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곧이어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어진 1부에선 베르디 오페라 < 운명의 힘 > 서곡과 < 라 트라비아타 > 의 아리아를 연주했다. 유럽에서 활동 중인 테너 김재형과 소프라노 이명주가 협연했다. 이씨는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와 이미 두 차례 부산 공연을 함께 했다.

숨을 고른 오케스트라는 2부에서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마단조 작품 64를 연주했다. 어지간한 성인 오케스트라도 소화하기 힘든 곡이다. 음산하면서도 장중한 차이콥스키 곡의 특성을 살리기가 만만치 않아서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주눅 들지 않았다. 지휘자는 마에스트로 정명훈씨의 아들 정민이었다. 젊은 지휘자는 오케스트라를 패기로 이끌었다. 음악에 대한 열정이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의 풋풋함을 매력으로 승화시켰다.

3악장에 이르자 아이들은 음악과 놀기 시작했다. 1등을 하기 위해, 부모 등쌀에 못 이겨, 먹고살고자 음악을 한 게 아니었기에 가능했다. 그저 음악이 좋아 그 속에 파묻혔다. 지휘자와 단원들은 한 몸이 됐다. 한 곳을 향한 강렬한 염원이 서로를 단단히 묶어놓고 있었다. 4악장을 지나 연주가 모두 끝나자 관객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 차례 커튼콜이 이어졌다. 오케스트라는 클라이맥스 부분을 앙코르 곡으로 들려줬다. 막이 내려온 뒤에도 카네기홀은 흥분으로 가득했다. 소년의 집을 후원하고 있는 중년의 미국인 관객은 한참을 공연장에 서 있었다.

"그동안 녹음으로만 연주를 들었는데 직접 공연을 보니 가슴이 벅찼습니다. 카네기홀에서 공연한 다른 오케스트라 연주와는 색다른 감동이 느껴졌어요."

지휘자 정민도 "3년 가까이 아이들과 호흡을 맞췄는데 오늘 연주가 최고였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대개 프로페셔널 오케스트라는 실력을 70%만 발휘해도 성공이라고 평가한다. 그런데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는 매번 실력의 120%를 뽑아낸다는 게 정씨의 설명이다. 큰 무대일수록 잠재돼 있는 가능성이 더 강하게 뿜어져 나온다는 것이다.

정씨가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와 만난 건 3년 전이다. 아버지 정명훈씨가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를 좀 도우라"고 한 게 계기가 됐다. 그는 아버지를 따라 유럽에서 지내며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2005년 서울대 음대 기악과에 바이올린 전공으로 입학했다가 지난해 독어독문학과로 전과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지휘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지만 딱히 지휘자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운 건 아니었다.

그런데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와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지휘자의 길을 걷게 됐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지휘를 가르쳐주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특별히 가르쳐주시는 건 없어요. 궁금한 걸 여쭤보면 30분 정도 후다닥 이야기해주시고 말죠. 한두 마디면 무슨 뜻인지 아니까요."

단원들에게 정씨는 지휘자이기에 앞서 이웃집 형 같은 존재다. "지휘대에 서면 엄해지지만 평소엔 우리와 장난도 치며 함께 놀아요. 꼭 친형 같은 느낌이 들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바이올린을 연주해온 이성훈(17세)군의 말이다.

정명훈씨와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의 만남도 운명적이다. 그는 4년 전 지인에게서 이들을 소개받았다. 한 사람씩 연주하는 모습을 볼 땐 그저 그렇거니 했다. 그런데 합주가 시작되자 그는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음악을 향한 아이들의 열정과 순수함이 거장의 마음을 흔든 것이다. 그 속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벅찬 감동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정명훈은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에서 음악 교육의 미래를 보고 있다.

"음악은 무엇인가를 하기 위한 도구가 될 때 생명력을 잃습니다. 그냥 음악이 좋아서 노래하고 연주해야 진정한 음악이지요.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는 그런 음악을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단원 중 대다수는 음악가가 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음악에서 삶의 희망을 얻고 음악과 하나가 되는 경험을 했다는 겁니다. 그게 음악이 존재해야 할 궁극적인 이유이지요."

※ 폐교 위기 산골 학교 학생들이 만들어낸 감동의 하모니

지난 2월 11일 강원도 평창군 방림면 계촌초등학교에는 제48회 졸업식을 축하하기 위해 전교생 48명이 모두 강당에 모였다. 이들이 연주하는 '위풍당당 행진곡'을 듣는 교장선생님은 눈시울을 붉혔다. 전교생을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만든 산골 마을의 감동 스토리 뒤에는 학생과 선생님들의 노력이 뒷받침하고 있었다.

"학부형들을 앞에 두고 눈물을 보여서 미안하더라고요. 사람들이 음악회를 보고 눈물을 흘린다고 하면 눈물이 그렇게 쉽게 나나, 했는데 제가 음악회에서 눈물을 흘려보기는 처음이에요."

이날 음악회는 지난해 3월 창단한 시골 학교 오케스트라의 성과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연주회였다. 학교를 떠나는 가장 능숙한 6학년 연주자 8명이 함께하는 마지막 졸업식 연주이기도 했다. 벼르던 연주회를 위해 권오이 교장선생님과 오케스트라를 담당하는 이경우 선생님은 직접 서울의 남대문과 동대문 시장을 다 돌아서 교복을 마련했다.

선생님들이 직접 발품을 팔아 만든 교복은 연주회 당일 아이들 모습을 더욱 빛나게 해주었고, 선생님들의 감격도 작지 않았다. 학부모들 역시 아이가 집에 와서 연습하는 모습을 제외하면,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처음으로 본 셈이다.

이례적으로 졸업식을 찾은 평창군 교육장은 "시골 학교에서도 충분히 '명품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며 칭찬했다. 39개 학교가 폐교하고 33개 학교가 남아 있는 터라 평창군 교육장에게 이날 행사는 더없이 소중했다. 학생 수가 어느 정도 줄면 분교가 되고, 더 줄면 폐교가 되는 과정을 거치며 농촌에서는 점점 폐교가 늘어간다. 그런데 계촌초등학교에서는 교육 때문에 도시로 이사하기로 결심한 부모가 다시 번복해 계촌에 남기로 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 바이올린 활로 칼싸움하던 아이들이 어느새…
권 교장과 선생님들이 오케스트라를 창단하겠다고 결심한 것은 지난해 3월. 그 전해부터 염두에 두었지만 예산 문제로 인해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전교생이 모두 단원이다 보니 악기 구입비가 1천만원을 넘어갔다. 선생님들은 필요한 기자재를 아끼는 등 장기적인 절약 모드에 돌입했다. 문화예술진흥청에서 주관한 '문화예술선도학교'로 선정돼 일부 예산은 지원을 받았다.

예산보다 더 큰 부담은 희망자가 아닌 전교생이 단원이기 때문에 전교생 모두 오케스트라 단원으로서 기량을 갖춰야 한다는 것. 오케스트라의 관리와 지휘를 맡고 있는 이경우 선생님은 처음 시작할 때에는 반신반의했다고 한다.

"아이들이 처음 악기를 잡은 게 2009년 3월이에요. 3월부터 여름방학 전까지는 악기의 활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를 비롯해 아주 기초적인 연습만 했어요. 여름방학 캠프 때부터는 오케스트라로서의 연주가 가능했죠. 처음에는 많이 불안했어요. 사실 시작할 때는 악보를 읽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었거든요. 도레미파솔라시도부터 가르친 거죠."

시골이다 보니 사교육이라는 게 전혀 없는 상황에서 악기를 실제로 보는 것도 생소한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처음엔 바이올린 활을 가지고 칼싸움을 하던 아이들. 하지만 담임선생님이 음악에 대한 관심을, 방과 후 교사가 악기 다루는 기술을 맡아 가르치면서 아이들은 변하기 시작했다.

6학년 안길남군은 "다 같이 배우는 시간이라는 생각에 연습에 빠지는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저학년 학생들은 고학년이, 남학생들은 여학생들이 가르쳐주며 서로 이끌어주었다. 1년 전에는 잡아보지도 못하던 악기를 접해서 결국 전교생 모두가 오케스트라 단원이 될 수 있던 데에는 '산골 아이들의 순박하고 밝은 성격'이 한몫했다고 선생님들은 믿고 있다.

전교생이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고 나서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성적의 놀라운 향상이다. 2009년 계촌초등학교 학생들의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평균 점수는 2008년에 비해 전 학년이 20점 가까이 향상되었다. 5학년 정재희양은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을 배우면서 수학 점수가 확실히 올랐다고 한다. "수학 문제를 풀다 보면 일어나서 돌아다니고 싶은 마음이 많이 생기는데, 악기를 연주하며 한자리에 앉아 있는 버릇을 들였더니 집중력이 생겼다"며 신기해했다.

5학년 담임인 이경우 선생님도 아이들이 연주를 시작하면서 집중력이 향상됐다는 것을 느꼈다. "4~5개월 정도 지나니까 조금씩 아이들이 변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게 하루아침에 막 변하는 건 아니잖아요. 오케스트라 연주를 하다 보면 움직이지 않고 기다려야 할 때가 많아요. 다른 사람의 연주를 들으며 자신이 연주할 타이밍을 기다려야 하는 거죠. 그럴 때 자세를 풀고 쉬는 게 아니라 차렷 자세로 활 끝을 통일해두어야 해요. 이런 경험이 집중력뿐 아니라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는 데에도 도움이 많이 돼요. 친구들과의 작은 일로도 상처를 받기도 하고,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기 힘든 아이가 있거든요. 그런 아이도 점차 감정 기복이 줄고,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려는 노력을 보이기도 했어요."

6학년 담임인 이용원 선생님은 아이들이 음악을 접하고 연주하면서 훨씬 활발해졌다고 한다. 오케스트라 연주를 통해 자신감을 얻은 덕분에 발표력도 향상되었다.

◇ 언젠가는 시골 학교를 찾는 아이들이 많아지길…
주로 시내에 있는 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이용원 선생님은 처음 계촌초등학교에 왔을 때 언성을 높이지도 않고 싸우지도 않는 아이들의 조용하고 순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춘기엔 반항을 하며 선생님 속을 썩이는 경우가 있는데, 이곳 아이들은 너무 순해서 정이 가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움도 있었다.

"오죽하면 제가 쉬는 시간엔 좀 뛰어다니라고 했어요. 그래도 조용하게 앉아 있죠. 착하고 순박해서 크게 떠들 줄도 몰랐던 것 같아요. 그런 아이들이 악기를 연주하면서 새로운 놀이 문화가 생긴 거예요. 부모님 앞에서 자신감 있게 연주를 했다는 얘기를 들을 때도 흐뭇했어요. 농사철에는 바빠서 아이들에게 신경을 못 써주는 분들이 많지만 아이가 악기를 들고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대견했다며 기쁜 마음을 담은 편지를 써서 보내주시기도 했어요."

8명이 졸업하고 2명이 입학해 42명이 남은 계촌초등학교. 하지만 졸업장을 받고 떠나는 언니, 오빠의 뒤를 이어 6학년이 되는 후배들은 어느새 첼로와 콘트라베이스 연주를 해내고 있고, 2, 3학년 아이들도 곧잘 바이올린 소리를 낸다. 교육 때문에 도시에 가는 게 아니라 언젠가는 도시 아이들이 시골 학교를 다니기 위해 전학을 오게 만들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만든 산골 학교 오케스트라의 명맥이 쉽게 끊어지지 않을 것 같아 다행이다.

* 48명 전교생이 만들어낸 감동의 하모니. 계촌초 권오이 교장은 학생들이 악기를 다룬 후부터 몰라보게 달라졌다고 한다.
기획-이효순 기자
취재-정경민('중앙일보' 뉴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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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찾다가 발견한 신문기사. 이런 일이 있었구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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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의 역사, 역사의 순간 -퓰리처상 사진전

이번 사진전은 1942년부터 2010년까지 퓰리처상을 수상한 보도사진 145점을 전시한다. 지난 1998년에도 서울에서 전시가 되어 당시 10만여 명이 관람하는 대기록을 세운 바 있다.

이번 전시에서 추가된 1998년 이후 수상작들은 아직도 생생한 국제사회 이슈들을 되새기게 하고 있다. 나이로비 대사관 폭발 사건과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스캔들(1999년 수상작), 리베리아의 참혹한 내전(2004년 수상작) 등 그 해 최고의 뉴스거리들이 망라돼 있다. 특히 지난 2002년 뉴욕 맨하튼 한복판에서 발생한 세계무역센터 폭발사건은 지난 10여 년간 무려 3번이나 퓰리처상에 등장할 만큼(2004년, 2005년, 2006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퓰리처상 수상 보도사진은 지구촌의 주요 뉴스를 한 컷의 영상으로 응축시켜 보여준다. 연도별 수상작을 감상하는 것은 근∙현대 세계사를 눈으로 읽는 것과 다름없어, 최고의 사진 작품이 주는 감동과 함께 시사 상식을 익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특히 청소년들에게는 사진의 예술성과 뉴스 보도의 진정성을 동시에 배울 수 있는 현장 학습의 장이 될 것이다. 더군다나 모든 사진에는 해당 장면을 포착한 사진기자와의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한 설명문구가 따라붙어 당시 상황을 더욱 생생하고 긴장감 있게 느낄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최인석 기자 mk3k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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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기록되는 순간 영원합니다. 사진의 세부적인 것까지 주목해 볼 때, 훨씬 깊은 인상을 받게 됩니다."
사진의 시대가 지고 있다는 소리도 있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사건의 현장에는 기자들이 있었고,
그들은 한 장의 사진을 위해, 목숨을 맞바꾸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뉴스다시보기-클릭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100621225114620&p=i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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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기자는 단순히 관찰자가 아니라 기록자다. 역사의 순간에서 순간의 역사를 만드는 사람들.
영원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사진의 영원성...사진은 얼마나 영원할까.





Posted by 리네플





정대세선수의 나이키 축구화 - 신발 뒤에도 국기를 다는게 관례일까? 암튼 흥미롭다.



올해는 유난히 축구선수들의 축구화가 화려하다. 주황색, 노랑색, 연두색도 있었던 것 같다.^^
그리스와의 첫 경기에서 우리 선수들의 꽃같은 운동화 색깔에 잠시 눈을 뗄수가 없었다.

앗! 저건 뭐지? 흐음~

북한과 포르투갈 전에서 북한 선수들이 우천용 축구화를 신지 않고 있었다는 김병지 해설위원의 얘기가 화제다.
그랬구나...어쩐지..
경기를 보면서 북한을 응원하게 되었더랬다.
북한이 이길거라는 예상이 완벽하게 빗나가고 대량 실점까지 하는 데 진짜 속이 쓰렸다.ㅜ
요즘의 스포츠는 경제적 지원과 스포츠 과학의 전문적인 도움이 절실한데 북한의 현실로 미뤄보아
제대로 된 지원이 없었을 게 분명하다.
전날 아르헨전과 우리의 경기를 보는 것 같았다. 너무 안타까왔다.

오늘 우리는 나이지리아와 비기고 아르헨티나의 도움(?)으로 16강을 확정지었다.
아직 남은 경기에서 북한이 선전해주었으면 그리고 물론 대한민국도 그래주었으면하게 된다.
밤을 꼴딱 새고 낮과 밤이 뒤바뀐 하루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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